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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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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7. 18:32 독서
또 임명동의안에서도 신·구파의 파벌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구파의 윤보선
대통령은 같은 계파인 김도연을 총리후보로 지명하였으나, 신파 의원들이 그인준을 거부하였고 이후 신파 소속인 장면이 지명을 받아 인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신·구파의 갈등은 계속되었는데, 바로 곽상훈 민의원 의장과 이영준 부의장의 사임에 관한 건이었다. 1960년 10월 11일에 대학생 들의 의사당 난입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곽 의장과 이 부의장은 이 사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이유로 사임을 표명하게 된다. 이에 구파는 새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신파는 사표 수리시 내각불신임으로 간주하겠다고 하면서 맞섰다. 결국 두 사람에 대한 사임은 없던 일로 되었다. 그 외에 이창수 참의원 사무총장의 임명동의안에 관해서도, 두 계파는 대립하였는데, 이후보의 과거행적과 부정축재 등을 구실로 신파의 반발이 있기도 했다.
민주당 내의 이러한 파벌갈등은 먼저 신·구파 의원들의 출신배경이나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구파는 민주당의 전신인 민국당을 이루던 인사들로 이루어졌지만, 신파는 무소속 또는 자유당 출신의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 민국당은 한민당과 상해임시정부 계열의 인사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정당이었고, 나중에 1955년에 민주당으로 흡수되었던 배경이 있다. 신파의 핵심세력은 장면을 중심으로 한 흥사단계 인사들인데, 이들은
주로 평양지방 출신이었으며 과거 미국에 오래 거주하여 친미적 성향이 강했
다.
또한 당시의 정치적 구조와 관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수당의 정치지 도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대통령 본인이 당적을 떠나는 것은 형식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거기에 의회 다수파인 신파는 장면 총리를 지지하고 있었으나, 소수파인 구파는 윤보선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었던 점도 있었다. 결국 구파는 이후에 민주당을 탈퇴하여 신민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파적 속성 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령의 존재가 그 원인이란 평가도 존재하는데, 대통령과 총리의 그릇된 관계 설정으로 인하여 제2공화국의 의원내각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의원내각제 특유의 제도적 운영의 원리도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101)
그리고 신파 출신의 민주당과 구파 출신의 신민당 이외에는 영향력 있는 정
101) 강원택, “제2공화국 내각제의 불안정에 대한 정치제도적 평가”, 『한국정치외교사논 총』 제30집 제2호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09). 47면.
64양원제 개헌에 필요성에 관한 연구/이경준

 

posted by 조현정팀장